Artist Statement
나의 드로잉은 계산되지 않은 것을 추구한다. 눈을 감고 손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무의식 속에 축적된 현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눈을 감은 채 무의식을 이용한 드로잉을 통해 어느 누군가의 형체를 떠올리며 선을 그리는 행위로 작업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나온 드로잉은 남자 혹은 여자로 인식되기도 하며 관찰자의 내면의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반영되어 그림의 성별을 정할 수도 있다. 작업은 평면 위에 조형물들이 배치되어 필수 불가결적인 관계로 얽힌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림 안에서 인위적으로 빛을 설정하여 명암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실제 덩어리를 붙여 쌓아올리는 방법으로, 평면회화위에 입체물을 붙인다는 것이 다소 인위적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실제 입체적인 부분에 덩어리를 붙임으로써 인위적이지 않은 방법을 채택하였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접근하려는 시도로 출발하여 계산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직관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다양한 과정에 걸쳐 만들어지는 조형물들은 인간관계안에서 겪는 많은 경험과 난관 등에서 얻을 수 있는 개인의 정체성 혹은 멀티페르소나로 비춰진다. 인간의 본성적인 메커니즘은 사회생활에서의 페르소나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건강한 페르소나는 한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에 따라 가면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보다는 그것이 있기에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뒷받침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인간이 스며들기 위해서는 가면은 필수 불가결적인 존재이다. 작품의 상징성으로도 보이는 눈동자는 ‘자기모니터링(Self-monitoring)’으로, 살아가는데 인간관계에 있어 중요한 ‘눈치’로 해석된다. 시선을 옆으로 향하고 있는 눈동자들은 사회에서 무의식중에 셀프-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인간관계 내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인식되며 하나의 페르소나와 같은 셈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며 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페르소나를 형성하여 살아간다. 페르소나는 본연의 성격과 동일하게 여겨지며 사회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게다가 콤플렉스로부터 보호해주는 기능을 하기에 지속적으로 발달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페르소나와 그 이면인 그림자는 양극적 대립관계에 있기에 페르소나가 늘어날수록 그림자는 점점 심화되어가며 그것을 마주하는 것은 수치심으로 다가오게 된다. 둘의 조화를 이루게 하는 자아는 자기수용에서 비롯된다. 이는 페르소나에 속하지 않는 이면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의식 속의 그림자를 의식화해 나가면 또다시 의식화해야 할 무의식의 그림자는 생성된다. 이러한 반복을 거듭하면서 맞이하는 어려움과 고찰은 인간을 더욱 성장시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작품안에서의 선과 면 위에 올라간 덩어리들이 상호작용하는 모습으로 비춰내고 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개인이 지닌 내면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고 페르소나의 이면까지 자신의 일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을 관찰자와 나누고자 한다.
그림 안에서 인위적으로 빛을 설정하여 명암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실제 덩어리를 붙여 쌓아올리는 방법으로, 평면회화위에 입체물을 붙인다는 것이 다소 인위적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실제 입체적인 부분에 덩어리를 붙임으로써 인위적이지 않은 방법을 채택하였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접근하려는 시도로 출발하여 계산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직관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다양한 과정에 걸쳐 만들어지는 조형물들은 인간관계안에서 겪는 많은 경험과 난관 등에서 얻을 수 있는 개인의 정체성 혹은 멀티페르소나로 비춰진다. 인간의 본성적인 메커니즘은 사회생활에서의 페르소나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건강한 페르소나는 한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에 따라 가면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보다는 그것이 있기에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뒷받침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인간이 스며들기 위해서는 가면은 필수 불가결적인 존재이다. 작품의 상징성으로도 보이는 눈동자는 ‘자기모니터링(Self-monitoring)’으로, 살아가는데 인간관계에 있어 중요한 ‘눈치’로 해석된다. 시선을 옆으로 향하고 있는 눈동자들은 사회에서 무의식중에 셀프-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인간관계 내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인식되며 하나의 페르소나와 같은 셈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며 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페르소나를 형성하여 살아간다. 페르소나는 본연의 성격과 동일하게 여겨지며 사회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게다가 콤플렉스로부터 보호해주는 기능을 하기에 지속적으로 발달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페르소나와 그 이면인 그림자는 양극적 대립관계에 있기에 페르소나가 늘어날수록 그림자는 점점 심화되어가며 그것을 마주하는 것은 수치심으로 다가오게 된다. 둘의 조화를 이루게 하는 자아는 자기수용에서 비롯된다. 이는 페르소나에 속하지 않는 이면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의식 속의 그림자를 의식화해 나가면 또다시 의식화해야 할 무의식의 그림자는 생성된다. 이러한 반복을 거듭하면서 맞이하는 어려움과 고찰은 인간을 더욱 성장시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작품안에서의 선과 면 위에 올라간 덩어리들이 상호작용하는 모습으로 비춰내고 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개인이 지닌 내면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고 페르소나의 이면까지 자신의 일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을 관찰자와 나누고자 한다.